[전문가 논단] 송승종 대전대 특임교수·국제분쟁전문가 / 푸틴 과오 반복 안하고 싶지만… 트럼프의 이란 전쟁 딜레마(주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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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논단] 푸틴 과오 반복 안하고 싶지만… 트럼프의 이란 전쟁 딜레마(주간조선 제2902호)
송승종 대전대학교 특임교수·국제분쟁전문가

지난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 플로리다 마러라고에 마련된 이란 공격 관련 상황실 모습. 트럼프 뒤편에 ‘장대한 분노 작전’이라는 문구가 적힌 지도가 있다. photo 백악관 X
다소 과장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대(對)이란 전쟁은 여러 측면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전쟁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개인화된 결정’, 즉 ‘푸틴의 전쟁’이자 ‘트럼프의 전쟁’이란 점이다. 지도자 개인의 세계관이 위협 평가, 목표 설정, 수단 선택을 모두 독점한 결과, 두 전쟁 모두에서 계획된 구상과 실제적 현실 간의 괴리가 통제불능 상태로 나타났다.
지도자의 오판이 전쟁으로 이어져
두 사례의 가장 큰 공통점으로 ‘제도의 해체’가 선행되었다. 지도자의 개인적 판단과 인식이 전략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구조가 사전에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푸틴의 경우에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우크라이나 담당 부서가 친러 저항세력의 규모와 키이우의 조기 함락 가능성을 과장 보고했다는 평가가 유력하다. 이는 푸틴이 오판을 생산하는 버블 속에 갇혀 있었음을 암시한다.
트럼프의 경우 국가안보보장회의(NSC)·펜타곤·합참이 충성도 기반으로 ‘인적 청산’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하르그섬(호르무즈해협의 핵심 거점) 점령, 정권교체, 무조건 항복 같은 황당한 주장들이 쏟아졌다.
다음으로 공격 낙관주의와 상대 전략 문화의 몰이해를 들 수 있다. 이란의 전략 문화는 미국의 전략 문화와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 미국의 전략 문화는 제1·2차 세계대전의 결정적 승리(‘무조건 항복’으로 달성된)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압도적 화력과 기술적 우위를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단기간에 적의 저항 의지를 분쇄하고, 명확한 항복 조건과 함께 전쟁을 종결하는, 다시 말해 ‘결정적 승리(decisive victory)’의 문법이 미국식 전략 문화의 초석이다. 6·25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간전쟁에서 반복된 좌절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리, 결정적 승리’의 문법은 미국 전략 문화에서 좀처럼 바뀌지 않는 ‘디폴트 값’으로 굳어져 있다. 요컨대 ‘최대 압박’을 가하면 상대가 ‘합리적 판단’에 따라 순순히 굴복할 것이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가 의기양양하게 요구했던 이란의 ‘무조건 항복’이 한바탕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은 바로 그러한 약점이 드러난 단적인 사례다. 이란의 전략 문화는 전혀 다른 역사적 토양에서 성장했다. 이란은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경제적 파탄, 국제적 고립, 재래식 군사력 열세라는 3중의 압박 속에서도 8년을 버티는 뚝심을 보였다. 이 전쟁은 이란인들에게 저항과 순교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적 내러티브로 내면화시킨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외부의 군사적 압박은 정권의 굴복을 강요하는 촉매가 되기는커녕, 정반대로 내부의 정치적 균열·불만을 봉합하고 저항의 담론을 자극하는 ‘깃발 결집’ 효과를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체제의 약화·분열·붕괴를 노린 미국의 군사적 강압이 취약한 이란 정권의 생존 논리를 오히려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역효과를 초래한 것이다.
정치적 목표의 불확실성도 문제다. 두 개의 사례 모두에서 전쟁의 목표가 불분명했다. 푸틴이 제시한 ‘비나치화·비군사화’는 개념적으로 모호할 뿐 아니라, 달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나 전쟁의 종결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전쟁 목표는 개전 이후부터 종전 시점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차에 접어든 현재 시점에서 ‘비나치화·비군사화’의 구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짧은 전쟁, 쉬운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을 푸틴이 지금까지 명확한 종전 기준도 제시하지 못한 채 장기 소모전에 시달리는 현실은 애당초 설정된 정치적 목표 자체가 허황된 슬로건에 가까웠음을 방증한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휴전’ 등이 거론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출구전략을 탐색하기 시작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유의미한 타협점 도출을 위한 진정한 외교적 제스처인지, 아니면 고강도 군사행동으로 기습하기 위한 눈속임(기만술)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어쨌거나 만일 트럼프가 출구전략 모색에 진정성을 보인다면, 이는 개전 초기부터 ‘명예로운 퇴로’를 차단하고 지금까지 장기 소모전의 수렁에 빠져든 푸틴의 사례와 분명한 대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푸틴과 다른 길을 선택하려 한다해도 이미 전쟁이 장기화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의미와 연관이 깊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시기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오스만제국의 남진, 포르투갈의 인도양 패권 장악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다양한 세력들이 호르무즈해협을 노렸던 논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거의 똑같다. 제국의 흥망성쇠와 무관하게 이 해협의 통제권을 확보한 자가 자원·교역·권력의 흐름을 장악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 명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이다. 오늘날 이란이 해협을 앞세워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는 행위는 역사적으로 면면히 반복되어 온 ‘통제 경쟁’이 현대적 무기 체계와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재현된 형태다.
호르무즈의 전략적 가치는 지리적 조건 자체에 본원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해상 항로가 극도로 협소하게 압축된 구조는 특정 행위자에게 매우 유리한 영향력을 부여하며, 특히 해협 북측 연안을 실효적으로 점유한 이란은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전략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란의 해안 미사일 진지, 소형 고속정 전술, 기뢰 부설 능력 등은 모두 이러한 지리적 이점들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비대칭 전력의 산물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대중동 전략 역시 호르무즈해협을 중심축으로 형성되어 왔다. 1980년 ‘카터 독트린’ 이후 미국은 페르시아만의 에너지 흐름 보호를 핵심적 국가이익으로 명시했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 벌어진 ‘유조선 전쟁’(1984~1988)에서는 실제로 해상 호위 작전을 직접 수행하며 이러한 원칙을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현재의 전략 상황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정밀유도 드론, 해안 발사 대함미사일, 자율 수중무기 같은 비대칭 전력의 확산으로 인해 전통적 해군력만으로는 해협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변화가 이미 진행되는 중이다.

지난 3월 25일 이란 테헤란 서부 집회에서 친정부 지지자들이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국기를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AP
이란이 발견한 새로운 핵옵션
오늘날 중동지역 위기의 근원 가운데 하나는 이란의 핵문제다. 핵무기의 진정한 위력은 ‘메가톤’으로 측정되는 물리적 파괴력보다 ‘억제력’이라는 심리적 구조에 있다. 즉 실제 사용되지 않더라도 ‘사용 가능성에 대한 신뢰성’이 관건이다. 그런데 비핵국가 이란은 ‘핵무기 같은 억제력’을 구현하고 있다. 해협 봉쇄, 인프라 타격, 미사일·드론을 통한 교란 능력은 핵폭탄처럼 즉각적 파괴력을 보이지는 않지만, 글로벌 경제를 인질로 삼는 방식으로 비용 부과를 강요한다. 이는 고전적 핵억제력과 유사한 효과를 초래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신뢰성 있는 절박성’이다. 미국·이스라엘이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포함한 50여명의 지도부를 한꺼번에 몰살시킨 ‘참수작전’은 바로 그러한 신뢰성, 다시 말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절망적 상황에 내몰린 이란이 최후의 수단으로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무차별적 역내 인프라 공격에 나설 가능성을 드라마틱하게 높여놓았다. 정권이 생존 위협에 직면할수록 평시에는 비합리적으로 보였을 선택도 합리적 전략으로 변환된다. 즉 통제불능의 확전 가능성 자체가 억제력의 핵심적 구성요소가 된다는 말이다.
만일 참수작전 시도를 중단하고 외교적 관여로 전환한다면, 이란의 위협은 ‘절박성’을 상실하면서 신뢰성이 약화되고 억제력 효과 역시 감소할 것이다. 반대로 지상군 투입을 통한 무리한 해결책은 이란의 억제 구조를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확전 사다리’를 극한으로 밀어올릴 위험이 크다. 결국 미국이 선택해야 할 옵션은 ‘결정적 승리의 쟁취’가 아니라 ‘제한적 실패의 관리’다. 지난 3월 24일자 뉴욕타임스는 칼럼을 통해 이러한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글로벌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회피하는 전략적 절충인 동시에, 트럼프가 체면을 살리면서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출구다.”
손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버나드 몽고메리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관련하여 반복되어온 공통의(어쩌면 가장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양면전쟁의 회피다. 전쟁 승리의 요체는 전투력 집중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역사적 금기에 해당하는 양면전쟁 회피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유력하다.
‘양면전쟁’이란 대이란 군사전쟁과 대중국·유럽 무역전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개별 전쟁만 놓고 보면 저마다의 전략적 논거는 충분하다. 불공정 무역 구조를 재편하여 미국의 산업 기반을 회복하겠다는 주장, 그리고 수십 년간 역내 불안정과 핵위협의 중심이었던 테헤란 정권을 없애야 한다는 논리도 나름의 명분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목표들을 동시에 추구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이하 생략…)
송승종 대전대학교 특임교수·국제분쟁전문가 /
주간조선(제2902호), 2026-03-28(http://week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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